Mark Levinson Nº 53
Dual Monaural Power Amplifier
- Posted by 최 원 태
스위칭 앰프의 문제점과 마크 레빈슨의 IPT 기술
스위칭 앰프는 출력단에서 쉴새없이 켜고 끄는 스위칭 작업을 계속한다. 따라서 '스위칭 노이즈'(Switching Noise)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대개의 스위칭 앰프들은 이 스위칭 노이즈를 줄이기 위해 가청(可聽) 오디오 대역(20Hz~20kHz) 보다 위 쪽에(약 100kHz) filter를 두어 노이즈를 걸러낸다. 그런데 이때 필터의 위치가 가청 오디오 대역에 가까이 근접해 있으면 위상 관계에 역효과를 주어 주파수 응답성이 떨어지고 이미징이 스무스 해지기 쉽다.
HSG의 IPT 기술은 스위칭 주파수를 100kHz 보다도 훨씬 더 멀치감치 높힌 500kHz~2MHz 대역으로 밀어 내었다. 이 정도 대역이면 스위칭 노이즈나 그 노이즈에 수반 되는 배음 구조 등이 오디오 신호에 영향을 미칠 만한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이 대역에서 필터를 사용해 노이즈를 제거하면 필터링 과정도 단순 해지고, 이미징이 뭉개지거나 주파수 응답성에 영향을 주는 일도 거의 없다. 원래 IPT 기술은 스위칭 앰프의 "데드 밴드"(Dead Band)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완된 것인데, 결과적으로 스위칭 노이즈를 처리하는 복합적인 기술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데드 밴드'는 왜 발생할까? Class D 증폭 방식의 도해(圖解)를 다시 살펴 보자. S₁이 On+을 S₂가 On-를 맡는다. 그런데 이렇게 두 개의 스위치가 사용되면 Class B 앰프에서처럼 크로싱 지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오디오 웨이브 폼이 Positive 증폭에서 Negative 증폭으로 넘어 가거나 또는 반대로 Negative 증폭에서 Positive 증폭으로 막 넘어가는 그 교차 포인트에서, Positive와 Negative가, 아주 찰나지만 잠깐 동안 동시에 꺼지는 포인트가 발생한다. 왜 그럴까? 만에 하나 S₁, S₂두 스위치가 잠깐 동안이라도 동시에 켜져(On) 있는 상태가 되면 전류가 S₁과 S₂를 관통하여 흐르게 되어 기기에 무리를 주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On과 Off가 아주 딱 부러지게 칼 같이 동시에 이루어 지는 것인데 제 아무리 기가 막힌 재주를 지닌 출력단이라고 해도 아주 조금의 gap도 없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시그널 갭(Signal Gap)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즉, 어떤 신호도 들어 있지 않은 Zero Crossing Point가 생기는데 이를 흔히 데드밴드(Dead Band)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시그널 갭은 가끔 발생 하는 것이 아니다. 20kHz 오디오 시그널을 예로 들면 초당 약 4만번 발생한다. 단지 워낙 '찰라의 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 뿐이다. 데드 밴드는 음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데드밴드를 줄이기 위해 Transition을 빠르게 가져 가려다가 혹시라도 Voltage가 중복 되면 기기에 무리가 간다. 결국 '음질'과 '기기의 안정성',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게 되는 것이다.
IPT (1) - BiTec
하만은 BiTec 이라 이름 붙인 기술을 통해 위 딜레마를 이렇게 해결한다. PWM 신호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즉 두 개의 스테이지를 만들어 연결 배치 시키되, 이 두 스테이지의 PWM 신호는 서로 위상(Phase)이 반대이다. 아래 그림을 보자. 왼쪽 그림은 Negative Conduction 일 때의 흐름이고, 오른쪽 그림은 왼쪽 그림과 역 위상 PWM 데이터를 가진 Positive Conduction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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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T (2) - Interleaving
Nº 53은 네 개의 IPT 앰프단를 가지고 있다. 이 네 개의 IPT 증폭 스테이지들은 서로 인터리빙되어 연계되면서 PWM 변조 샘플링 주파수를 2MHz까지 크게 높이게 된다. 이렇게 하면 소리를 뭉개는 원인이 되는 '과도한 필터링'을 막을 수 있어, 더 순도 높은 신호를 유지하게 된다. 또 여러 출력 소자들이 동일한 스위칭 주파수에서 작동이 되기 때문에 스위칭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어지고 보다 더 크고 꺠끗한 파워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인터리빙 기술을 설명하기에 앞서 미리 밝혀 두어야 할 것이 있다. 하만의 기술적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그들의 새로운 "스위칭 앰프 기술"은 일단 이론적으로는 매우 유효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실제 이 기술이 '최종 결과물로서의 사운드'에 얼마나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현재로서는 검증 할 도리가 없다. 유사한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도 많다면, 공통적인 음향적 특성을 통해 이론적인 기술과의 관계를 귀납적으로 추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럴 형편도 아니다. 오로지 리스닝을 통해 제시된 이론이 진짜로 가시적인 설득력을 갖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지 '짐작'일 뿐이다.
필자는 Nº 53에 대한 아무런 기술적 지식을 습득하지 않은 상황에 곧바로 시스템에 연결하여 장시간 리스닝을 했었다. 그때의 첫 인상에 대해 잠시 언급하기로 하자. 첫째, 필자는 Nº 53이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강하고 큰 파워와 깊숙하고 단단한 저역의 능력을 보여 주는 것에 놀랐다. 체구는 Nº 33H보다도 작은데 파워와 다이내믹 레인지는 Nº 33을 월등히 능가하고 있었다. 이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동일한 순 A급 증폭 방식을 사용했다면 이 부분은 도저히 설명이 안 될 것이다.
필자가 Nº 53의 첫 인상에서 느낀 또 다른 강렬함 중 하나는 응답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정교하면서도 스피디하고 탄력성이 돋보이는 사운드이다. 가격 때문에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겠지만 만일 Nº 53 같은 앰프를 여러 대 묶어 멀티채널로 사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AV 사운드는 밀도감이나, 빠른 응답성을 이용한 이동감이 매우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Nº 53의 멀티 채널 사운드는 장관음(壯觀音)을 이룰 것 같아 보인다. 더불어 소리가 아주 깔끔하고 잡티 없이 정숙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Nº 53의 음질적 특징들이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IPT 기술에서 유래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어느 정도까지를 일반적인 Class D 앰프의 특성으로 보아야 하고 어느 정도 이상은 IPT 고유의 기술에서 유래된 현상인지 가늠할 기준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현재로서는 HSG이 설명하는 IPT 기술을 이해해서 옮기는 단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IPT의 인터리빙(Interleaving)이란 여러 개의 IPT 스테이지를 연계 시켜서 유효 스위칭 주파수를 높이는 기술이다. 앞서 설명 했듯이 각 스테이지의 스위치들은 서로 반대의 위상을 담당한다. 실효 스위칭 주파수는 이 위상의 차(差)로 인해 높아지게 된다. (아래 그림 참조) 역 위상의 두 개의 스테이지가 연계되어 한 개의 IPT 스테이지를 이룬다(N=2), 그리고 IPT 스테이지 두 개가 인터리빙 되고(N=4), 다시 인터리빙 된 두 개의 IPT 스테이지들이 또 서로 인터리빙되어, 결과적으로 네 개의 IPT가 모두 인터리빙 되는(N=8)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실효 스위칭 주파수는 배수 단위로 계속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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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군(群)들은 유효 스위칭 주파수가 변화함에 따른 Waveform 과 Spectrum 그래프들이다. (※ 아래 그림들은 마크 레빈슨 측의 측정 자료이므로 기술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 공적인 자료가 아님을 밝혀둔다.)
먼저 출력 웨이브 폼 그림을 살펴보자. 상단 좌측 그림은 일반적인 Class D 앰프의 Waveform(N=1)이다. 이 때의 실효 주파수는 100kHz 정도가 된다. 그 옆으로 상단 우측 그림은 Nº 53의 IPT 스테이지 한 개(N=2)에서 나타나는 Waveform 이며, 하단 좌측 그림은 두 개의 IPT 스테이지가 인터리빙된 상태(N=4), 하단 우측 그림은 네 개의 IPT 스테이지가 인터리빙(N=8) 상태의 Waveform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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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 상태에서는 스위칭 신호의 증폭이 +Vcc에서 -Vcc까지 모두 걸쳐 있으며, 실효 스위칭 주파수는 100kHz 정도가 된다. 그러나 N=2, N=4, N=8 식으로 IPT 기술이 적용되면서 스위칭 시그널 증폭은 1/2, 1/4, 1/8 증폭을 하게 되며, 실효 스위칭 주파수도 200kHz, 400kHz, 800kHz 대역으로 점점 높아지게 된다.
아래는 같은 경우의 스펙트럼 그래프이다. 역시 상단 좌측 그림이 일반적인 Class D 앰프의 Spectrum(N=1)이며, 그 옆의 상단 우측 그림은 1개의 IPT 멀티 스테이지(N=2), 하단 좌측 그림은 2개의 IPT 멀티 스테이지(N=4), 하단 우측 그림은 4개의 IPT 멀티 스테이지(N=8)가 적용된 예에서의 Spectrum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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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레빈슨이 '순 A급'을 지켜왔던 그들의 오랜 신조를 버리고, 전격적으로 'D급'으로 선회 했을 때에는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고, 나름 그만한 자신(自信)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신(自信)의 근거가 바로 IPT 인터리빙 및 Bi-Tec 기술이다. 이들을 통해 "스위칭 노이즈"와 "데드 밴드" 문제만 해결한다면, 당연히 고효율 대출력이 가능한 Class D 방식이 향후의 대세(大勢)요, 대안(代案)이 될 것이라고 마크 레빈슨은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착색에 유혹되지 않는 사운드
Nº 53의 사운드를 단어로 표현 하라고 하면, 아마도 다음의 단문(短文)들이 열거 될 수 있겠다.
"강하다", "깊다", "단단하다", "힘이 넘친다", "밀도감이 좋다", "두텁다", "탄력적이다"... 등등
독자들은 이런 추상적인 문구들의 조합을 통해 대략 Nº 53의 소리 경향을 짐작 하실 수 있을 것이다. 열거된 단어의 성향에서 보듯 Nº 53의 사운드는 매우 '남성적'이다. 베이스는 깊고 단단하며, 중고역은 또렷하고 스피디하다. 토널 밸런스도 우수하다. 스테이징은 넓지 않고 이미징은 다소 앞쪽으로 aggressive 하게 다가오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Nº 53에게서는 어떤 의도된 과장이나 성향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 다시 말해 음의 착색이 거의 없다. 필자는 Nº 53의 가장 큰 강점으로,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바로 이 부분, '착색이 없는, 중립적인 사운드' 부분을 꼽고 싶다.
돌이켜 보면 Mark A. Levinson이 77년도에 25와트 모노럴 파워 앰프 ML-2를 발표한 이래, '마크 레빈슨' 브랜드의 제품 컨셉은 꾸준히 그 쪽이었다. 착색이 별로 없다, 중립적이고 투명한 소리... 마크 레빈슨 제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때 보통 쓰이는 표현들이다. No.53에서도 이 컨셉은 그대로 이어졌다. 사실은 훨씬 더 강화(强化)된 느낌이다.
사실 Nº 53은 리스너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안겨 주는 기기이다. 그냥 있는 둥 마는 둥 한 기기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아주 확실하게 알려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Nº 53가 자신의 오디오 시스템에 편입되는 순간부터 Nº 53은 그 사용자의 시스템을 지배적으로 장악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수 만불짜리 기기라면 그 정도 '효과'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러한 시스템 장악력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이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소리의 '착색'(着色)이다.
착색이 최소화된 상태에서의 존재감은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것이지만, 착색이 강한 성향의 기기가 시스템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면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이다. 한 번 착색된 음에 경도(傾到) 되면 그 '새장 안'에서 벗어 나기가 쉽지 않다. 혹자는 평생 그 안에 갇혀 제한된 종류의 오디오만 즐기기도 한다. 마치 아직도 어떤 이들이 TV 화면을 보며 '히다치 TV의 레드(red)는 따뜻하고 소니는 강렬해. 난 파나소닉 레드가 부드러워서 제일 좋아.'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세상에 따뜻한 레드, 강렬한 레드, 부드러운 레드는 없다. "틀린 레드와 맞는 레드'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오디오 기기에서는 공공연하게 착색이 일어나는 것일까? 음악은, 소리의 여러 가지 특성들이 뒤섞여 이루어 내는 복합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소리의 음향적 특성들, 예를 들어 톤 밸런스라던가, 과도 응답성이라던가, 공명음이라던가, 타임 딜레이라던가 등등의 여러 요소들은 각 기기마다 성능의 차이, 표현 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소리의 모든 특성이 100% 완벽하게 구현된 "슈퍼맨"이 될 수는 없으므로, 자연히 제품 디자이너는 자기의 철학에 따라 어떤 것은 일부 포기하고 대신 다른 것은 굳건히 지키는 트레이드-오프도 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오디오 기기들이 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또 동일한 설계자가 만든 제품들이 대개 비슷한 소리를 내주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것은 소리의 착색 때문이 아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오디오 기기도, "슈퍼맨"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밸런스 문제'인 것이다. (이는 '소리'가 근본적으로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그렇다. 만일 소리의 제반 특성들을 모두 0과 1로 명확하게 정의해서 완벽히 전달할 수 있다면, 세상의 오디오 기기들은 대개가 다 엇비슷한 소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소리는 결코 디지털로 100% 다 채집될 수도, 또 환원될 수도 없다.)
착색은 이와는 좀 다르다. 예를 들어 싼 부품을 쓴 제품이라면 고급 부품을 쓴 제품보다 표현 능력에서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능력이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최대한 자연스럽고, 균형있게 소리를 전달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기기들은 여기서 '잔 재주'를 피운다. 의도적으로 고역을 찌그러트려, '화사하고 세련된 음'으로 위장하기도 하고, 고의적으로 부스트 시킨 저역을 '풍부한 양감의 베이스'로 오도(誤導) 하기도 한다. 무언가 경쟁제품이나 상급기기보다 더 특색 있고 어필할 만한 요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리의 착색은 단지 상술(商術) 때문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의외로 많은 오디오 제조사들이 이러한 '착색'을, 당연한 자신들의 권리이자 의무로 생각하고 있다. 즉, '소리의 역할', '오디오 기기의 역할'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는 음악이 아니다. 소리는 음악을 구성하는 물리적 입자요, 언어적 메타포(metaphor)일 뿐이다. 소리들을 통해 우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지만, 그 것은 소리가 만들어 낸 감동이 아니라, 소리가 전달해 주는 감동이다. 즉, 소리는 전달 매개체일 뿐이다. 그런데 오디오 기기를 만드는 사람, 즐기는 사람 모두 가끔 이를 착각 할 때가 있다. 성능이 우수한 기기들은, 꽉 막힌 쳇증을 뚫어주듯 '소리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전에 듣지 못했던-사실은 전에도 존재는 했지만 단지 원활하지 못한 소통 때문에 막혀 있었던-소리를 새로이 듣고 감탄하게 된다. 그때 일어나기 쉬운 착각이 그 '새로운 소리'를 방금 들여 놓은 그 '새로운 기기'가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착각에 빠지게 되면, 모든 오디오 기기들이 다 '각기 개성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능력'이 있고, 사용자는 그 중 자기 취향에 맞는 특정한 것을 고르는 것이라고 오디오를 생각하기 쉽다. 이런 까닭에 어마어마한 가격의 고급 부품들을 사용한 하이엔드 기기들조차도 의도적인 착색을 서슴치 않게 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고급 기종으로 갈 수록 소리는 더욱 더 '중립적'이 되어야 하고, '왜곡된 소리에 의한 감동'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나쁜 녹음 상태의 음반은 나쁘게 들려야 하고, 서투른 연주자의 거칠고 찌그러지는 연주음은 그 상태 그대로 들려야 한다. '자기 자신 만의 특색있는 음색' 같은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 기기마다 음질적 특성이 다른 것은 정상이지만, 의도적으로 변질시킨 고유의 음색을 갖는 것은 비정상인 것이다.
Nº 53은 이 부분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Nº 53의 사운드는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이런 류의 표현이 좀 무색하다. 그럼 '남성적'이라고 표현했던 의미는? 사실 세상에 남성적인 소리가 어디 있고, 여성적인 소리가 어디 있겠는가? '소녀시대'의 노래를 Nº 53으로 들으면 보이쉬하게 들린다는 뜻인가? ^^; 정말 그렇다면 어마어마한 '착색'이다. Nº 53이 '남성적'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단단하고, 파워풀하고, 스피디한 음향적 특성을 통칭(統稱)할 수 있는 컨셉의 단어를 찾다 보니 '남성적'이라고 한 것일 뿐, 음색을 표현하는 말로 쓴 것은 아니다.
음악 감상(鑑賞)
그러나 음이 기대만큼 넓게 퍼지지 않는다. 원래 이 부분이 이랬던가? 케이블을 옆에 서 있는 할크로 DM88 파워 앰프에 옮겨 보았다. 무대가 완연하게 넓어진다. 저역의 깊이와 포커싱은 Nº 53이 다소 앞서고, 중고역의 뻗음새와 스테이징 능력은 할크로가 확실히 앞선다. 두 기종은 모두 정상급의 소리를 왜곡없이 들려주지만 사운드 성향은 완전히 대조적이다. Nº 53은 할크로 보다는 차라리 볼더 쪽에 가깝다. 할크로의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 능력에 감탄 하셨던 분들에게 Nº 53은 다소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볼더의 강렬함과 정숙함, 큰 스케일에 감탄 했던 분들이라면 Nº 53에서도 얼추 비슷한 느낌이 가능하다. 필자 개인의 소견으로는 볼더 2050이 좀 더 편안하고 촉촉하며 여유있는 느낌을 주는 반면, Nº 53은 좀 더 스피디하고 탄력적이며 긴장감을 요구하는 편 아닌가 싶다. 그러나 스케일 면에서는 Nº 53도 큰 사운드를 구사하지만, 볼더 2050에 비할 수준은 안 된다. 스테이징도 볼더 2050이 더 넓고 광활하다. 반면 Nº 53은 부드럽고 또박또박한 느낌을 준다. 견강부회(牽强附會) 억지로 '편 가르기'를 하자면, 할크로 쪽보다는 볼더 쪽에 더 가깝다는 비유일 뿐, 결코 2050과 Nº 53이 동류(同類)라는 뜻은 아니다. 오디오라는게 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브렌델의 또 다른 연주곡.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3번 op.27, 2악장 알레그로는 Nº 53의 투명하고 빠른 음 전달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 곡이다.
브렌델을 들었으니 내친 김에 하이페츠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Heifetz, Bach Sonatas & Partita> (1999, BMG) 곧장 "샤콘느"(Chaconne, BWV 1004)로 넘어가 보았다. 이 레코딩은 원래 노이즈가 심하다. 필자는 때때로 이 음반을 앰프나 파워 관련 제품을 테스트 하기 위해 쓴다. 볼륨을 키워 자세히 들어보면 노이즈가 평탄치 않고 다양하게 변조가 된다. 좋은 기기라면 이 노이즈가 아주 섬세하게(?) 다 들려야 한다. Nº 53 또한 그랬다.(파워 컨디셔너 관련 제품 대다수가 이 미세하게 들리는 고음 노이즈를 잘라 버린다. 그때 노이즈만 잘리는 것이 아님은 불문가지이다.) 하이페츠에서는 브렌델 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역시 아주 충실하고 분석적인 음 전달 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파트는 초고역대의 여린 음을 하이페츠가 신기(神技)에 가까운, 예의 그 운지(運指)를 통해 빠르고 섬세하게 전달할 때이다. 섬칫해진다. 빠른 응답도 응답이지만 음이 찰라의 순간에도 또렷하게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는 능력이 놀랍다. 하이페츠가 아무리 빠르게 강약을 조절하며 연주를 시도해도 슬쩍 뭉개면서 전달하는 낌새가 없다. 투명하고 분석적인 능력은 전작인 Nº 33 또한 높이 평가 받던 요소인데, Nº 53은 한층 더 강화 되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하이페츠의 샤콘느의 클라이맥스인 "폐부를 찌르는 듯한 처절한 날카로움"이 다소 무디어진 듯한, 그 보다는 차라리 충실한 음의 전달에 치중한 느낌이 든다. 이 때의 '날카로움'이란 고역이 찌그러져 모서리가 생기는 음(音)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Beethoven Symphony 8번, Bruno Walter 지휘, Colombia 심포니> (1995, Sony Classic). 개인적인 애청곡 중 하나이다. 1악장 Allegro, 도입부. 짐작대로 저역의 전달이 역시 또렷하고 단단하다. 전체적인 오케스트라의 균형을 잡아주는 튼튼한 반석(盤石)의 역할을 한다.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다. 역시 말씀 드렸듯이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은 발군(拔群)이다. 1959년도 녹음이라 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고, 공간 layering이 세밀해 각 악기들이 겹쳐짐이 없이, 또렷이 정위적(正位的)으로 표현이 된다. 한 마디로 기본기(基本技)가 튼튼한 선수를 보는 것 같다.
이번에는 좀 색다른 음반을 준비해 보았다. <Zappa, The Yellow Shark> (1993, Ryco Disc). 작곡가, 연주자이자 영화감독이고, 반정부 아티스트로도 알려진 프랭크 재파는 20세기 최후의 Post Modernist라 불리울만 하다. 비틀즈와 딥 퍼플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던 이 천재 음악가는 199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유작으로 이 앨범을 남긴다. 녹음이 아주 우수한 음반이다. 들어보면 재즈도 아니고, 락도 아니고, 퍼포먼스도 아니고 처음에는 어리둥절 "이거 무슨 전위(前衛) 예술인가?" 싶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들어보면 언뜻 즉흥적으로 보이는 연주 속에서 번뜩이는 기지(機智)와 치밀한 천재성을 발견하고 곧 그 세계에 빠져 들게 된다.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Best Recording <Jennifer Warnes, Famous Blue Raincoat> (2007, Shout)를 들어 보자.
독자들에게 아주 좋은 타이틀을 하나 소개 드리고자 한다.
우리는 앞서 Nº 53의 기술적 특징들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었다. Nº 53이 깊고 탄탄한 저역과 빠른 응답성을 보이는 점을 '스위칭 앰프'라는 특성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곤란하다. 모든 스위칭 앰프가 다 Nº 53 같은 특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원가도 다르고, 또 소리가 오로지 증폭 방식 한 가지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스위칭 앰프는 저역의 깊이와 응답성에서 이점이 있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 투명하고 분석적인 것은 Nº 33 이전부터 내려온 마크 레빈슨 앰프의 특성이라 하겠지만,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500W(8옴 기준)의 대출력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스위칭 앰프'의 장점 때문이다.
역시 대출력의 위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음압은 그렇게 높은 수치의 파워를 요구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8옴 기준 1000W의 출력을 가진 볼더 2050 같은 앰프는, 우선 그 대출력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을 만큼의 전압을 벽체에서 끌어내는 것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우리가 220V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그러나 더 큰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도, 정격출력이 큰 고급 앰프들은 대개 우리에게 더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와 보다 안정되고 여유 있는 저역을 보장해준다. 특히 음압이 높지 않은 6옴 또는 4옴의 풀레인지 스피커를 만나면 더더욱 그 위력이 실감된다. No.53 또한 그렇다. 저역이 깊고 단단한 것과 다이내믹 레인지가 넓은 것은 500W(8옴)/1000W(4옴)의 대출력 스펙과도 또한 연결되는 내용이라 보여진다. 더불어 음량을 어지간히 높혀도 평탄성을 잃지 않으며, 여전히 정숙한 배경을 유지한다. 필자가 사용하는 할크로 DM88은 과거 여러 측정자료를 통해 노이즈 가장 적은 앰프로 소문난 제품이다. Nº 53은 아직 실측 자료를 입수할 수 없어 수치적으로 명확하게 비교 할 수는 없지만 일단 청감(聽感) 상으로는 할크로보다도 더 정숙한 느낌이다. Nº 33과 크게 구별되는 요소 중 하나도 이 점이다. Nº 33은 다소 거친 느낌이 있지만, Nº 53은 훨씬 부드럽고 깔끔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말씀 드렸듯이 Nº 53은 시스템에 편입이 되자마자 곧바로 그 시스템을 장악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는 '카리스마'가 있다.
맺으며
HSG는 향후 파워 앰프 시장이 '스위칭 파워' 쪽으로 급격히 이동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과거 LP가 그랬고, 진공관이 그랬듯이, 리니어 앰프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크 레빈슨의 상표를 달고 있는 회사의 예측이니 무시 할 수 없겠다. 또 최근 스위칭 앰프나 파워, 더 나아가 디지털 앰프 분야의 기술 발전 속도도 놀랍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이엔드 파워 앰프들도 과거 Class A 일변도의 흐름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일종의 변혁기이다. 아마도 Nº 53이 그 변혁의 속도를 가속 시키데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마크 레빈슨의 레퍼런스 모델"이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시 문제는 가격이다. 물론 하이엔드 오디오는 가격보다는 성능이다. 성능이 좋으면 말도 안 되는 가격도 때로 용납되는 특수한 시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환율이 가장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환율이 안정될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오디오 하는 사람들에게 요즘은 정말 고민의 시기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명가(名家) 마크 레빈슨이 본격적으로 부활 하고 있다는 점만은 모든 오디오파일에게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 원 태)
Associated Equipment :
Digital source : Mark Levinson Nº 31.5 CDT & Nº 30.6 DAC (for CD), Sony Playstation 3, Pioneer Elite BDP-05FD (for Blu-Ray)
Preamplification: Mark Levinson Nº 32 (for CD) & Nº 502 (for Blu-Ray)
Power amplifiers: Halcro dm88 monoblocks
Loudspeakers: Revel Ultima2 Salon2
Cables: <Interconnect> Nordost Valhalla (Digital), Transparent Reference XL (Analog), AudioQuest HDMI-3 (HDMI) <Speaker> Transparent Reference XL (with WBT connector) <AC> Transparent MM, JPS Labs Digital AC, Sanctus Power Cord
Power Conditioner : PS Power Plant P-500, Mark Levinson PLS-330 (for Nº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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